내 아이의 입에서 "엄마", "아빠"라는 첫 단어가 터져 나왔을 때의 감동을 기억하시나요? 그 후로 아이의 언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며 부모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하지만 또래 아이들이 두 단어, 세 단어를 붙여 문장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 우리 아이는 여전히 몇 개의 단어에만 머물러 있다면 부모의 마음은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특히 '언어 폭발기'라 불리는 24개월 무렵, 이러한 걱정은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과연 우리 아이, 괜찮은 걸까요? 언제까지 기다려봐야 할까요? 본 포스팅에서는 24개월 아기 언어 발달에 대한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발달 지연을 의심해 볼 수 있는 신호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부모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발달심리학과 언어치료학적 관점에서 심도 있게 다루어 보겠습니다. 2025년 최신 연구 자료와 전문가들의 견해를 바탕으로 부모님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덜어드리고, 현명한 길잡이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24개월 언어 발달의 표준 이정표
24개월은 영유아 발달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변곡점입니다. 특히 언어 발달에 있어서는 가히 '혁명적인 시기'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 아기들의 뇌에서는 언어를 담당하는 베르니케 영역(Wernicke's area)과 브로카 영역(Broca's area)의 시냅스 연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이는 곧 어휘력과 문장 구성 능력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이어집니다.
어휘력의 폭발적 증가
24개월 아기는 평균적으로 50개에서 200개 이상의 단어 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평균치이며 개인차는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단어의 개수가 아니라, 새로운 단어를 배우는 속도입니다. 이 시기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개씩 새로운 단어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어휘 폭발(vocabulary spurt)'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한국 영유아 언어발달 선별검사(K M-B CDI) 데이터에 따르면, 24개월 영아의 표현 어휘 수는 평균 약 150개에 달하며, 상위 10%는 300개 이상의 어휘를 구사하기도 합니다.
문장 구성의 시작
단순히 단어를 나열하는 것에서 벗어나, 두 개의 단어를 의미 있게 조합하여 문장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 이 바로 24개월 언어 발달의 핵심적인 특징입니다. "엄마 물", "아빠 까까", "멍멍 저기" 와 같이 명사+명사, 명사+서술어 형태의 '전보식 문장(telegraphic speech)'을 구사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문법 구조에 대한 초기 이해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매우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아이는 제한된 어휘를 조합하여 자신의 복잡한 의사를 표현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게 됩니다.
의사소통 능력의 발달
표현 언어뿐만 아니라, 이해 언어(수용 언어) 능력 또한 급격히 발달합니다. 24개월 아기는 "방에 가서 곰 인형 가져와"와 같이 두 단계로 이루어진 지시를 이해하고 수행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거 뭐야?"와 같은 간단한 질문을 하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요구를 표현하고, 타인의 말에 반응하며,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는 등 사회적 상호작용의 도구로서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어 발달 지연을 의심해 볼 신호들
모든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합니다. 하지만 발달에는 분명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가 존재하며, 특정 이정표에 현저히 도달하지 못했다면 주의 깊은 관찰과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아래의 신호들은 절대적인 진단 기준은 아니지만, 부모님께서 우리 아이의 언어 발달을 점검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체크리스트 가 될 것입니다.
표현 언어의 지연 징후
가장 눈에 띄게 관찰되는 부분입니다. 만약 24개월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래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주의가 필요합니다.
- 제한된 어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50개 미만, 특히 "엄마", "아빠"와 같은 친숙한 단어 외에 새로운 단어가 거의 늘지 않는 경우.
- 두 단어 조합의 부재: "엄마 줘" 와 같은 의미 있는 두 단어 문장을 전혀 시도하지 않는 경우.
- 모방의 어려움: 부모가 말하는 단어나 짧은 구를 따라 하려는 시도가 거의 없는 경우.
- 과도한 제스처 의존: 말보다는 손짓, 몸짓, 또는 의미 없는 소리(옹알이)로만 의사를 표현하려는 경향이 강한 경우.
이러한 경우, '단순 언어 지연(Late Talker)'일 가능성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말늦은이의 약 50-70%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정상 범주를 따라잡지만, 나머지 아동들은 지속적인 언어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초기 개입의 중요성 이 강조됩니다.
수용 언어의 문제 징후
표현하는 것보다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을 보인다면 더욱 심각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수용 언어의 문제는 인지 발달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 입니다.
- 간단한 지시 수행의 어려움: "공 가져와", "신발 신어" 와 같은 일상적이고 간단한 지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따르지 못하는 경우.
- 이름에 대한 무반응: 자신의 이름을 불러도 거의 돌아보지 않거나 반응이 없는 경우.
- 사물 인지의 어려움: 친숙한 사물(예: 컵, 신발, 공)의 이름을 말해주었을 때, 그것을 가리키거나 쳐다보지 못하는 경우.
아이가 지시를 따르지 않을 때,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이해하지 못해서'일 가능성 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언어는 사회적 소통을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따라서 언어 발달 지연은 종종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과 동반됩니다.
- 제한된 눈 맞춤: 다른 사람과 눈을 잘 맞추지 않으려 하는 경우.
- 상호작용에 대한 무관심: 또래나 어른과의 상호작용에 흥미가 없고 혼자 노는 것을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경우.
- 공동 주시(Joint Attention)의 부재: 부모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물을 함께 쳐다보거나, 자신이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 부모에게 손짓하며 함께 보자고 하는 행동이 거의 없는 경우. 이는 언어 발달의 매우 중요한 선행 기술 입니다.
언어 발달, 왜 아이마다 다를까요?
"옆집 아이는 말을 정말 잘하는데, 우리 아이는 왜 이럴까요?" 정말 많이 듣는 질문이자 부모님들의 가장 큰 고민일 겁니다. 아이의 언어 발달 속도는 다양한 요인들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됩니다.
기질적 요인과 유전적 영향
타고난 아이의 기질 역시 언어 발달에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다소 내성적이고 신중한 기질의 아이는 새로운 단어를 말하기 전에 충분히 듣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느라 표현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반면, 외향적이고 활발한 아이는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말을 시도하며 더 빨리 언어를 습득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또한, 부모나 가까운 친척 중에 말이 늦었던 가족력이 있다면 유전적인 영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환경적 요인의 중요성
아이는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언어를 배웁니다. 따라서 어떤 언어적 환경에 노출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 상호작용의 질과 양: 부모가 아이와 얼마나 풍부한 대화를 나누고, 아이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 주는지가 언어 발달의 핵심입니다. 아이의 수준에 맞춰 눈을 맞추고, 아이의 작은 표현에도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대화를 확장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 미디어 노출: 미국 소아과 학회(AAP)에서는 24개월 미만 영아의 미디어 노출을 강력히 제한할 것을 권고합니다. 스마트폰이나 TV의 일방적인 자극은 아이의 뇌 발달과 언어 습득에 필요한 상호작용의 기회를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2025년 현재, 과도한 미디어 노출은 영유아 언어 지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꾸준히 지목되고 있습니다.
개인의 발달 속도 차이
아이들은 각기 다른 발달의 시간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대근육 발달이 빨라 먼저 걷고 뛰는 것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그 이후에 언어 발달이 급격히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반대로, 신체 발달은 조금 느리지만 언어 발달이 먼저 두드러지는 아이도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아이와 단순 비교하며 조급해하기보다는, 우리 아이의 전반적인 발달 과정을 통합적으로 살펴보는 시각이 필요 합니다.
전문가 도움이 필요한 경우와 부모의 역할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기다리고, 언제 행동에 나서야 할까요? 무작정 기다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언어 발달에도 '골든타임'이 존재하기 때문 입니다.
전문가를 찾아야 할 때
앞서 언급한 '언어 발달 지연 신호' 중 2가지 이상이 2~3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관찰 된다면, 막연히 기다리기보다는 전문가의 평가를 받아보는 것이 현명합니다. 특히 수용 언어(이해)의 어려움이나 사회적 상호작용의 문제가 동반된다면 주저하지 마십시오.
- 상담 기관: 가까운 소아청소년과 의사, 발달 전문 병원, 언어치료 센터, 육아종합지원센터 등에서 초기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공식 검사: 전문가들은 부모 보고 형식의 K M-B CDI나 직접 검사 방식의 영유아 언어발달검사(SELSI), 취학 전 아동의 수용언어 및 표현언어 발달척도(PRES) 등 표준화된 검사 도구를 통해 아이의 언어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필요한 경우 적절한 치료적 개입을 권고할 것입니다.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언어 자극
전문가의 도움과 더불어, 가정에서의 부모 역할은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부모는 아이의 첫 번째이자 최고의 언어 교사이기 때문입니다!
- 아이의 세상에 말을 입혀주세요: 아이의 행동이나 아이가 보고 있는 것을 끊임없이 말로 표현해 주세요. "OO이가 자동차를 굴리고 있네. 붕~ 붕~", "와, 빨간 사과다. 우리 OO이 사과 먹을까?" 와 같이 아이의 시선에 맞춰 이야기하는 '평행적 대화(Parallel Talk)'는 매우 효과적입니다.
- 책과 함께 노래와 함께: 그림책을 함께 보며 그림을 짚어주고, 의성어·의태어를 풍부하게 사용해 주세요. "멍멍이가 깡충깡충 뛰어가네!" 처럼요. 또한, 간단한 동요를 함께 부르고 율동을 따라 하는 것은 언어 발달과 정서적 유대감 형성에 매우 좋습니다.
- '확장'과 '수정'의 마법: 아이가 "물!" 이라고 말했다면, "응, OO이 물 마시고 싶구나. 엄마가 시원한 물 줄게" 와 같이 아이의 말을 더 완전한 문장으로 확장해 주세요. 아이가 "빠방 탔어" 라고 잘못 말했다면, "응, 아빠 차 탔구나!" 라고 자연스럽게 수정된 모델을 들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절대 아이의 발음을 지적하거나 다그치지 마세요!
24개월, 우리 아이의 언어 발달이 조금 늦는 것 같아 걱정되는 마음은 모든 부모가 겪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중요한 것은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이기보다, 아이의 발달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것 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고 아이의 작은 성장 하나하나에 기쁨으로 반응하며 사랑으로 소통하는 부모님의 따뜻한 마음 입니다.